"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의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이 이 유령을 잡기 위한 성스러운 몰이 사냥을 위해 동맹하였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공공연히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이 책은 오직 강단에서만, 실패하고 패배한 과거를 연구하는 용도로만 읽힐 수 있었다. 이를테면 대학의 강의의 자료 중 하나로서. "...정권을 잡고 있는 자...
뜻밖의 재회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소 민망할 수 있다. "야치 또 걸렸다! 원샷! 원샷!" 술게임에는 원체 소질이 없지만 오늘따라 더 자주 걸리고 있다. 평생을 통틀어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마셔도 마셔도 정신이 말짱하다. 왜냐하면, "물 마셔." 맞은편에 앉은 쿠로오 씨가 컵에 물을 가득 따라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
- 카와니시, 생일 축하해! 별 거 아니지만 목 마를 때 마셔! - 고마워. 잘 마실게. "대체 기프티콘을 몇 개를 받는 거냐? 그걸로 일 년은 해먹겠네." "보통 그렇지." 불이라도 난 듯 카와니시의 핸드폰이 쉴 새 없이 깜빡였다. 깜빡일 때마다 커피 한 잔, 케이크 한 조각, 무료이용권 등 작고 쓸모있는 기프티콘이 속속 도착했다. "저녁에는 애인 만나나...
"많은 걸 하려고 하지 말아요. 지금으로서는 살아있는 것만 해도 대단히 힘을 내고 있는 거에요. 수면, 식사, 산책 이 세 가지만 제대로 하자고 생각해요. 자정 전에는 잠들어서 여덟 시간 이상 자는 거,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 귀찮더라도 알차게 챙기는 거, 하루에 30분 이상 햇빛을 쬐는 거."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낮에는 내내 피곤해요. 약을 먹...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되지만 처음 보는 순간 특이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특이하게 생겼다. 그것만으로는 그 사람을 판단한 게 아니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건, 예를 들어 뚱뚱한 사람은 게으를 거라 단정짓거나 못생긴 사람은 피해의식이 있을 거라 짐작하는 것이다. 즉 누군가의 외양과 그 사람의 인격을 내 선입견과 편견에 기반하여 멋대로 짝을 짓는 것...
"너를 좋아해." 그는 도통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말에 담긴 뜻만큼이나 낯설었다. 낯설고... 정다웠다. "네가 좋아." 다시 한 번 그가 말했다. 나는 입술을 꼭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는 체육관 2층의 커튼 뒤에 마주 서 있었다. 우리는 이 순간 이 장소로 한없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흘러왔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목...
"어렵지 않아." 츠키시마가 1 더하기 1은 2라는 사실을 깨우쳐주듯 말했다. "네가 너를 바라보듯 너 아닌 사람도 바라보는 거야. 그리고 네가 스스로에게 말하듯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는 거지. 예를 들어, 네가 수학 시험에서 30점을 받았다 쳐. 그러면 너는 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야치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야치, 오늘은 애인 만나?" "아니." "오늘도?" "응." 오늘은, 에서 오늘도, 로 달라지는 조사가 민트맛 사탕처럼 쌉쌀하게 속을 훑는다. 허하다. 나는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고 셔틀버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따스한 바람, 바람이 허한 속을 잠시 채웠다가는 다시 자리를 비운다. 채워지는 건 잠시, 비어있는 건 오래. 카게야마와 나처럼. 카게야마는 여...
1. 당일 새벽 -And I want to know I've got my mind made up now But I need more time- 오이카와는 눈도 뜨지 못하고 침대맡을 손으로 더듬어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을 찾았다. -And I want you to say- "여보세요." - 자냐? 이와이즈미였다. "자겠냐? 너 때문에 깼잖아! 꼭두새벽부터 무...
1. 고시키 선배란 무엇일까? 선배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기에 그 집단은 지나치게 다양하고 복잡다단하고 게다가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반드시 넘고 싶은 큰 산처럼 거대한 사람도 있고, 뭐가 뭔지 모르겠는 이상한 사람도 있고, 털끝만큼도 존경하기 싫은 사람도 있다. 세 번째 부류의 특징은 권위가 없는 주제에 권위적이고 터무니없는 심부름을 잘 시킨다는 것이다.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 "푸하하! 선배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하고 계신 겁니까?"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던 후타쿠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알 바냐?" 그러거나말거나 아이는 재잘재잘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막 다섯 살이 된 아이는 후타쿠치의 지인들 중에서 코가네가와를 가장 잘 따랐다. 원래도 그렇지만 코가네가와 앞에서는 특히 못하는 소리...
- 미안, 급체해서 오늘 조별모임에 못 갈 것 같아. 정말 미안해 ㅠㅠ 내 이럴 줄 알았다. 처음 조를 짤 때부터 예감이 안 좋았다. 전공필수과목이라 같은 과 사람들이 모여있는 수업이었는데도 한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의 선배였고, 한 명은 뺀질뺀질 빌붙어 학점 건사하며 놀러다닐 줄만 아는 동기였고, 또 한 명은- "쿠니미. 계속 잘 거야?" 입학할 때부터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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