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졌다. 곳곳에 눈이 얼어있는 길을 급하게 가려다 미끄러졌다. 뒤로 나동그라져 대자로 뻗었다. 건물, 사람, 나무, 거리, 모두 다 시야에서 사라지고 두 눈 가득 오직 드넓은 하늘만이 차올랐다. 도망갈 발이 없어 그저 도끼에 치이다 막 베인 나무처럼 누워 있었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에게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먹잇감일 테지. 갑자기 이 모든 게 바보같...
하고 싶은 건 해야 한다. 갖고 싶은 건 가져야 한다. 어떻게든 그래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어중간하게 굴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가질 수 있다.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스스로를 가꿔왔다. 나에게는 주어진 재능이 있고 쌓아온 실력이 있고 마땅한 자격이 있다. "강한 놈한테 서브 에이스 따내면 기분 좋잖아?"...
11:00 병원까지 기어가다시피 걸어가서 수액을 맞고 약을 받았다. 의사님께서 오늘은 휴식을 취하라고 하셨지만 결석은 하기 싫었다. 수업은 못 듣더라도 배구부 연습에는 가서 내 몫을 해야 했다. 수업에 빠지면 내 손해일 뿐 수업에는 아무 지장 없지만 연습은 그렇지 않으니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민폐 끼치기 싫다....
엄마가 장기 출장을 간 지 닷새째다. 앞으로 닷새가 더 지나야 돌아오신다. 가끔씩 잠깐씩이라도 엄마 얼굴을 종종 보는 것과 아예 보지 못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조금씩 엄마의 빈 자리가 마음을 잠식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언제나처럼. 엄마가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내가 느끼는 우울도 익숙한 사연에 깃드는 익숙한 감정이지만, 감정은 ...
야치가 이상하다. 아침연습 내내 똥씹은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면서 내 쪽을 흘끔거린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주체하지 못하는 게 멀리서도 느껴진다. 신경이 쓰인다. 짜증이 난다. 히나타나 카게야마가 그랬다면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짜증이 나지 않는다. 짜증이 나지 않는 나한테 짜증이 난다.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연습에 몰두하지 ...
나의 세계는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에게만 있는 유일무이한 세계다. 동시에 나에게 있어 유일무이한 세계다.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지만, 흐르고 또 흐르는 시간 속에서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들을 하나하나 고르고 골라 모아놓은 나의 세계가 꽤 즐겁고 좋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 교시 직전의 쉬는 시간. 여느 때처럼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던 츠키시마의 눈에 ...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집에 있는 한 행복해질 수 없다고 느꼈다. 기억이 닿는 과거부터 나는 집에서 마음 놓고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행복할 때마저 불안했다. 가족이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은 일 분 일 초가 가시방석에 앉아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 빌미가 되어 엄마나 아빠의 언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조마조마 필사적으로 눈치를 살...
방과 후 미야기 현립 카라스노 고등학교의 체육관은 평소보다 훨씬 시끌벅적했다. 오전에 온 학교가 뒤집어진 고백 사건이 여태 연애와는 별 인연이 없던 남자 배구부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주인공은 아직 체육관에 도착하지 않은 가운데 타나카와 니시노야의 목소리가 가장 우렁찼다. "1학년들 반성해! 적에게 허를 찔려서 야치를 지켜내지 못하다니!" "매니저를...
시간은 흐르고 또 흐른다. 그렇기에 한 번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삶의 단 한 순간도 되돌릴 수 없듯이. 너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본다. 너에게 처음 마음이 움직였을 때를 떠올려본다. 점점 마음이 끌려 깊어지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합숙 마지막 날 뒤풀이에서 너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어야 했고, 후쿠로...
어딘가에 다다른 뒤에도 야치와 켄마는 자세를 풀지 않은 채 오랫동안 포옹했다. 켄마가 야치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아팠다. 야치는 고통에 담겨 전해지는 어떤 간절함과 절박함을 좋아했다. 처음부터 그랬다. . 대학교 3학년 즈음부터는 공강 시간이 맞을 때마다 켄마의 집에 갔다. 켄마의 부모님은 맞벌이였기 때문에 낮에는 거의 집이 비어 있었다. 편의점에서 식사...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겨울방학을 맞아 미야기에 내려왔다. 카라스노 시절 친구들을 만나고 배구부 연습에 간식거리를 사서 찾아가는 등 미야기에서의 시간도 눈코 뜰 새 없이 흘러갔다. 크리스마스에는 히나타, 카게야마, 츠키시마, 야마구치를 집에 초대해 함께 트리를 장식하고 배가 터지도록 피자...
깜빡 졸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눈꺼풀이 무거웠다. 컴퓨터 모니터가 꺼져 있었다. 게임을 하다 졸다니 별일이었다. 새벽 두 시. 십 분 정도 졸았나? 십 분 치고는 긴 꿈이었다. 슬슬 자야 내일 맑은 정신으로 히토카를 데리러 갈 수 있겠다. 켄마는 미련없이 컴퓨터를 끄고 게임방에서 나와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드러누워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렸다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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